[콰디르와 한국 행동주의 ①] 월가의 암살자가 총구를 거뒀다 — 파미 콰디르는 왜 한국에서 '롱'으로 방향을 틀었나
공매도로 밸리언트·와이어카드를 무너뜨린 '월가의 암살자' 파미 콰디르가 공매도 펀드를 접고 한국에서 롱 행동주의로 전환한 배경을, WSJ·블룸버그 인터뷰와 공개 보도로 정리한 학습용 인물 해설. 콰디르와 한국 행동주의 3부작 1편. 목표가나 매매 판단은 제시하지 않는다.
콰디르와 한국 행동주의 · 3부작 연재
- ① 인물 — 월가의 암살자는 왜 롱으로 돌아섰나 — 이 글
- ② 수급 — 외국인은 정말 한국을 사고 있나
- ③ 판정 — 행동주의는 구원인가 먹튀인가
서울에 사무소를 내는 저격수
한 여성이 런던의 책상 앞에서 새벽 2시부터 한국 기업의 실적을 들여다본다.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지배구조를 캐묻고, 데이터를 쌓는다. 그리고 곧 서울에 사무소를 열고 현지 인력을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진출 스토리다. 문제는 이 여성의 정체다. 파미 콰디르, 여러 매체가 ‘암살자(The Assassin)‘라는 별칭으로 불러온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의 분석은 오직 한 방향, 무너질 기업을 찾아내는 데 향해 있었다. 회계부정과 사기를 적발해 공매도로 베팅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얻는 투자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티 머니’의 밸리언트 편에 주요 인터뷰이로 출연했고, 일부 매체는 HBO 드라마 ‘인더스트리’ 속 냉혹한 트레이더 캐릭터가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런 그가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롱(long)’, 즉 주가가 오르는 쪽에 베팅하는 전략에 나선다고 밝혔다. 무대는 한국이다. 저격수가 총구를 거두고 방패를 든 셈이다. 진짜 뉴스는 여기에 있다. “외국인이 한국을 좋아한다”가 아니라, 평생 나쁜 기업을 저격해온 사람이 이제 한국에서는 사는 쪽에 기회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이 암살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봐야 한다.
암살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콰디르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이다. 캘리포니아의 하비머드 칼리지에서 수학과 생물학을 전공했다. 월가의 전형적인 경영학·금융 엘리트 코스가 아니다. 숫자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생명과학 데이터를 읽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 공매도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무기는 인맥이나 감이 아니라 포렌식 분석이다.
이력의 출발점은 마이클 크렌세비지가 이끄는 헬스케어 전문 헤지펀드 크렌세비지 자산운용이었다. 여기서 콰디르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회계와 사업 구조를 파고드는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그리고 2015년,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 터진다. 캐나다 제약사 밸리언트(Valeant) 공매도다.
밸리언트는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고 약값을 공격적으로 올려 이익을 부풀린 회사였다. 시장은 이 회사를 성장주로 떠받들었지만, 콰디르는 그 숫자 뒤의 부실을 읽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공개 보도 기준으로 주가는 2015년 7월 약 257달러에서 2016년 3월 약 28달러로, 8개월 만에 90% 가까이 무너졌다. 시장이 사랑하던 성장주를 정면으로 겨눠 붕괴를 맞힌 것이다. 20대 중반의 애널리스트가 월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성공은 그를 독립으로 이끌었다. 콰디르는 2017년 자신의 이름을 딴 펀드 **사프켓 캐피털(Safkhet Capital)**을 세우고, 이듬해인 2018년 초 실제 펀드 운용을 시작했다. 이름부터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사프켓은 이집트 신화 속 수학과 지혜의 여신이다. 화려한 마케팅 대신 숫자와 논리를 앞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펀드는 오직 공매도만 하는(short-only) 집중투자 전략을 택했다. 시장 전체가 오르든 내리든, 콰디르는 무너질 회사만 찾아 베팅했다.
프린터가 저절로 켜지던 밤
공매도는 외로운 싸움이다. 시장 전체가 오르는 강세장에서 공매도 온리 펀드는 늘 역풍을 맞는다. 콰디르 자신이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공매도꾼은 아웃사이더다.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사프켓은 2018년 초 운용자산이 600만 달러에 불과한 작은 펀드였다. 대형 기관들은 “한 방짜리 반짝 스타 아니냐”며 의심했고, 최소 1억~2억 달러를 굴려야 돈을 맡기겠다는 닭과 달걀의 딜레마 앞에서 그는 버텨야 했다.
그 시기 그를 시험한 두 번째 대형 표적이 독일 핀테크 **와이어카드(Wirecard)**였다. 콰디르는 2018년부터 이 회사의 회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매도에 나섰다. 압박에도 확신은 꺾이지 않았고, 시장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다. 와이어카드는 2020년 대규모 회계부정이 드러나며 붕괴했다. 유럽 핀테크의 자랑에서 세기의 사기 사건으로 추락한 것이다.
공매도 투자자의 삶은 이 승리의 이면에 어두운 대가를 동반했다. 콰디르는 공매도 활동 과정에서 위조된 기자 사칭 이메일을 받았고, 한밤중 집 안의 프린터가 저절로 켜져 내부고발자 이메일이 인쇄되는 일까지 겪었다고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에 밝혔다. 다만 해당 보도는 이 사건들을 특정 기업의 소행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감시가 의심되는 정황을 겪었다는 그의 주장이며, 행위자가 규명된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일화는 하나를 분명히 보여준다. 콰디르는 시장에 베팅하는 도박꾼이 아니라, 부정과 지배구조의 결함을 감식하는 전문가이고, 그 대가를 감수해온 사람이다.
숫자로도 그의 감식안은 입증됐다.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보도에 따르면 사프켓은 2018년 순수익률 **+24.14%**를 기록했다. 같은 해 S&P500이 마이너스 4.4%였던 것과 대비된다. 운용자산은 이후 3,5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 수치들은 매체 보도값으로, 수수료 차감 기준이나 감사·규제신고를 통한 독립 검증 자료는 아니다.)
총구를 거둔 이유 — 왜 롱, 왜 지금, 왜 한국
2026년, 콰디르는 공매도 전문 펀드(Safkhet Sentinel)를 정리하고 새로 롱 전략 펀드를 꾸린다고 밝혔다. 커리어 처음으로 주가 상승에 베팅하겠다는 것이다. 그 무대로 그가 고른 곳이 한국이다.
논리는 의외로 일관된다. WSJ 인터뷰에서 콰디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 커리어는 나쁜 지배구조 탓에 무너진 기업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업을 찾으면 어떨까.” 부정을 들춰내 붕괴를 맞히던 감식 능력을, 이번엔 거꾸로 쓰겠다는 것이다. 숨은 썩은 부분을 찾는 대신, 부당하게 눌려 있는 멀쩡한 가치를 찾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이다.
왜 하필 한국인가. 그의 진단은 이렇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코스피 상장사의 3분의 2 이상이 장부가치(PBR 1배) 아래에서 거래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수치는 정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KRX 집계로는 저PBR(1배 미만) 기업 비중이 기준일에 따라 **약 63~66%**로, 확인된 자료상 엄밀히는 3분의 2를 넘지 않는다. 표현의 강도와 별개로, 상장사 다수가 순자산보다도 싸게 팔린다는 큰 그림 자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눌려 있나. 콰디르의 투자 가설은, 재벌 오너가 승계 과정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해온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그의 해석이지 확립된 인과는 아니다. 낮은 자본효율성, 수출·경기민감 업종 비중, 성장성 둔화, 지배구조 리스크, 보수적 배당정책 등도 저평가를 설명하는 유력한 요인들이다. 저PBR의 원인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타이밍이 그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2025년 개정 상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했고, 밸류업 정책과 저평가 기업에 대한 공시 강화가 추진되며 재벌 중심의 폐쇄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소액주주가 목소리를 낼 제도적 여건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노리나 — 삼성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걷어내야 한다. 콰디르가 노리는 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초대형 수출주가 아니다. WSJ 인터뷰에서 그는 반도체나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업가치 대비 지나치게 눌린 주가를 보고 한국을 골랐다고 밝혔다. 겨냥하는 건 정반대편, 국제 시장에 덜 노출됐고 지배구조가 폐쇄적인 중소·중형주다. 국내 보도에 따르면 시작은 3~4개 종목 수준의 소수 지분이다.
전략도 낯설지 않다.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 확대, 이사회 독립성 강화. 전형적인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다. 국내 보도는 그가 스스로를 소액주주 편에 선 행동주의자로 규정한다고 전한다.
여기서 균형추를 하나 달아둬야 한다. 저PBR이 곧 저평가나 주가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거나 성장이 정체된 기업은 낮은 PBR이 오히려 정당한 평가일 수 있다. 또 행동주의 자본은 수수료와 회수(exit) 구조를 가진 이해당사자이지 순수한 소액주주 대변인이 아니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가 단기 주가를 밀어 올리더라도, 장기 투자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반론도 오래됐다. ‘로빈후드’라는 자기규정은 매력적인 서사지만, 그것이 결과의 선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 지점이 3편의 핵심 논제다.
정리하면 콰디르의 이번 전환은 저격에서 행동주의 롱으로의 방향 전환이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에 베팅해 돈을 번다면, 행동주의 롱은 눌린 주가를 스스로 끌어올려 돈을 번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사용하는 무기(지배구조 감식 능력)는 똑같다. 그가 진영을 바꿨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한국에서 비대칭이 하락이 아니라 상승 쪽에 있다고 본 그의 판단을 보여준다.
통념 교정 — “한국에 반했다”는 낭만을 경계하라
이 뉴스를 “세계적 투자자가 마침내 한국의 진가를 알아봤다”는 애국적 서사로 읽고 싶은 유혹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콰디르는 한국이 좋아서 오는 게 아니다. 한국 기업의 저평가라는 특정한 트레이드를 노리고 온다. 그의 언어에는 애정이 없다. 상장사 다수가 장부가 아래라는 사실, 상속세 구조로 눌렸다는 가설, 상법 개정이라는 촉매. 철저히 계산이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냉정한 프로의 정직한 태도다. 다만 우리가 이걸 짝사랑이나 구원으로 미화하는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
타이밍도 곱씹을 만하다. 콰디르가 한국행을 밝힌 것은 사실 2026년 5월 WSJ 인터뷰와 블룸버그 팟캐스트였다. 한국 언론이 이 이야기를 일제히 받아쓰며 화제가 된 것은 두 달 뒤인 7월 20일 전후다. 왜 지금 다시 뜨거워졌을까. 그만큼 한국 증시의 밸류업·행동주의 서사가 이 시점에 시장의 관심 한복판에 있다는 방증이다. 뉴스의 신선도보다, 이 이야기가 왜 지금 한국에서 반복 소비되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외국인이 한국에 몰려온다”는 내러티브는 수급 데이터로 실제 확인되는가. 둘째, 콰디르 같은 행동주의 자본은 한국 소액주주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가.
다음 편 예고
암살자가 왜 총구를 거뒀는지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 2편(수급 검증): “외국인이 한국에 반했다”는 내러티브를 외국인 순매수 실데이터로 대조한다. 화제성과 실제 자금 흐름은 같은 방향일까.
- 3편(성과와 한계): 엘리엇이 삼성물산·현대차 주주총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례를 앵커 삼아 행동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따진다. 다만 삼성물산 건은 주총 표 대결과 이후 투자중재가 별개의 결과였던 만큼, 3편에서 표 대결·지분 처분·투자중재를 분리한 타임라인으로 다룬다. 이 행보는 소액주주의 구원인가, 차익만 챙기고 떠나는 먹튀인가.
암살자의 변신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그러나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것과 그 베팅이 한국 시장에 이롭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간극을 다음 편에서 채운다.
출처
- WSJ, They Call Her ‘The Assassin’ on Wall Street. She Has a New Target.
- Bloomberg, Short-Seller Dubbed ‘The Assassin’ Is Going Long Korea Stocks
- Bloomberg Odd Lots, ‘The Assassin’ Fahmi Quadir on How to Survive as a Short-Seller
- Institutional Investor, Hacked Printers. Fake Emails. Fahmi Quadir Was Up 24%
- Square Mile, Fahmi Quadir – the woman shaking up Wall Street
- Seoul Economic Daily(영문), Wall Street’s ‘Assassin’ Turns Long, Opens Seoul Office
- 전자신문, 월가의 암살자 “매일 새벽 2시 韓기업 분석”
- 이데일리, “지금이 적기”…’월가 암살자’도 한국 증시 꽂혔다
- 뉴시스, 공매도 대신 한국 기업 투자…’월가 암살자’가 방향 튼 이유
- EBN, “공매도로 돈 벌던 월가 큰손도 돌아섰다”
- OECD Corporate Governance Factbook 2025 —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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